단풍국소감1
서문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이모의 초대로 태어나 처음 북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사실 다른 이모 한 분이 두 딸과 여행을 계획 했던 것인데, 나의 대학 졸업과 시기가 맞물려 함께 가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좀 살아봤다고 영어는 부족하나마 가능했고, 복잡한 공항 수속을 헤매지 않고 받을 자신도 있었다. 이런 나의 특기를 살려 이번 여행에서 통역과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는 떠나기 2주 전에야 뉴질랜드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여독이 완전히 풀리기 전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를, 한국을 떠나 몬트리올로 향했다.
제주> 김포 > 인천> 토론토 > 몬트리올 이렇게 다섯 곳의 공항을 거쳐야 하는 여정이었기에 늦지 않게 경유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경유 대기 시간이 다소 빡빡해 걱정을 좀 했는데, 다행히 비행기 연착도 없었고, 맡기는 짐 없이 서둘러 움직이니 제 시간에 모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총 16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은 역시 피곤했지만 여행에서 느끼는 피곤함은 은근한 보람을 주기도 했다.
1. 한계 시간에 대해서
이번 여행에서 ‘이동’은 절반의 비중을 차지했다. 장장 왕복 32시간의 비행과 37시간의 차량 이동은 시간에 대한 나의 한계를 넓혀 주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내면서 나의 이동 한계 시간은 한 시간 이었다. 한 시간 이상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 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는 데 매일 편도 두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었다. 이후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한계가 많이 넓어지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그 한계를 다시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다.
세상은 넓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도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북아메리카는 한반도 크기보다 큰 호수가 있을 만큼 거대했고, 관광 버스 안에는 장시간 이동을 위한 간이 화장실이 있을 정도였다. 너무 힘이 들었다. 좁은 의자에 몸을 걸친 채 무릎과 허리는 쑤시고 피가 잘 돌지 못해 발과 다리는 퉁퉁 부었다.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멍을 때리며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반복되는 바깥 풍경에 질려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고립된 공간에서의 절대시간은 한국에 두고 온 걱정거리들을 소환 했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자기를 분리하고 비워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적정 수준 이상의 절대시간은 온갖 번뇌들을 불러들이고 되려 한국의 나와 일치 시키면서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버스 안 좁은 공간을 내 한숨으로 채우다 보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은 결국 끝이 났고, 최후의 기지개로 심신의 고통도 끝이 났다. 이를 반복하기를 몇 차례, 시간 대비 고통이 점차 줄어들었다. 면역이 생긴 것이다. 이젠 열 시간이라는 시간이 두려운 단위가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하는 지도 점차 터득하게 되었다.
이동시간
인천->몬트리올 (비행기 편도 16시간)
몬트리올 -> 퀘벡시티 (버스 편도 3시간)
몬트리올 -> 토론토 (버스 편도 6시간)
몬트리올 -> 뉴욕 (버스 편도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