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안 긴글
일요일의 만남
m-u-i
2018. 9. 16. 21:14
그녀와 나는 일요일 1시에 만나 필사를 한다.
그녀는 시를 읽고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도무지 화를 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녀에게서 거리감도 꽤 느꼈었지만
이십대의 후반에 마주쳐 서른에 다시 만난 우리는 꽤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지 않은 스스로를 꺼내보이기도 한다.
한여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그녀와
어떤 계절에도 쉽게 울고 웃는 내가 만나
일상의 안부를 묻고 그날의 책을 필사한다.
슥슥거리다 서로가 좋아하는 구절을 보여주기도 하고 비슷한 류의 영화나 전시 얘기가 끼어들기도 한다.
책이 읽히지 않을 만큼의 사건을 겪어온 날에는 책을 드문 드문 읽다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누구의 가족, 어디의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의 껍데기보다
스스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알맹이의 자기를 조용히 만나는 시간.
그녀와의 만남이 시작된 뒤로
외로움을 기반으로 한 불필요한 만남이 줄고
일상이 안정되었다.
진짜 나를 알아주는 이와의 소통으로 일상을 이어갈 원동력을 얻는다.
언젠가는 그녀와 얇은 책 한 권도 내보겠다고
오늘 조용히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