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의 신’을 버려라 >
저는 여기 뉴질랜드에서 동양에서 온 유학생으로 소수자에 속합니다.
소수자로 사는것이 얼마나 눈치 보이고 외로운 것이라는걸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설령 다수자에 속한다 하더라도 언제 소수자가 될지 모르는것이고,
우리 가족중, 친구중에 소수자가 없을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정의론에서 존롤스가 말한 '무지의베일'을 뒤집어 쓰고 사회를 바라봐야합니다.
다양성의 존중은 민주주의 사회의 생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고민해봅니다.
< ‘혐오의 신’을 버려라 >
1. 내가 2013년 한글 페북을 하게 된 것은 나의 동료 교수, 스티브 스프링클 (Steve Sprinkle) 의 책을 한국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미 영어로 하는 페북이 있었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나의 동료 교수의 책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고 한국에 있는 이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 동료교수는 성소수자 혐오에 의하여 폭력을 당하여 죽은 14명의 가족, 친구들과 인터뷰도 하고 그 사건들과 관련된 기사들도 분석하면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을 썼다. 4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나는 그의 책이 한국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넘어서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번역해서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론서보다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하여 보다 마음을 열어놓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2. 한국에 계신 두 분의 지인께 출판사를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나갔을 때 몇 분의 출판사분들과 만났다. 그런데 내 이야기도 듣고 책도 살펴보고 나서 그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내용은 좋은데, 출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나도 조금 지치기 시작해서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조광수 감독의 책을 출판한 <알마> 출판사에서 관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의 한국 방문이 거의 끝날 무렵에 이 연락을 받고서 얼른 약속을 잡았다.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알마>의 편집자를 만나서 한참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고, 그분께 편집회의를 위해 필요하겠다며 미국에서 가지고 간 영어 원본을 드렸다. 한참 후에 출판하시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지인께서 후에 번역자까지 소개해 주셔서, 나의 동료교수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것이다.
그 책의 원래 제목은 <끝나지 않은 생명들 (Unfinished Lives)> 인데, 한국어로는 <누가 무지개 깃발을 짓밟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나는 동료교수에게 한국방문을 제안했고, 스프링클 교수는 너무나 반가워했다. 그래서 나와 그는 10일 동안의 구체적인 한국방문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진 행사중의 하나가 김조광수 감독과 함께 ‘북 사인회’를 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 책으로 인해 한글 페북도 새로 열었고, 김조광수 감독 부부와도 만나게 되었다. (스프링클 교수의 인터뷰: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438
3.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한글 페북을 열게 된 경위를 소개하게 된 것은, 4월 28일 한국기독교협의회의 인권위원회가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하여 연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 마당”이라는 제목의 간담회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이다. 행사가 열리는 건물 주변에서는 “동성애를 거룩한 교회로 끌어들인 NCCK해체,” “동성애 옹호, 공산주의 종교통합” “동성결혼 옹호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려 하는 마귀집단,” “동성결혼 옹호 마귀집단,” “하나님의 심판, 두렵지 않은가”라는 말들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장소를 옮기기까지 하면서 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기사를 읽고서, 참으로 아연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성소수자 혐오가 유독 개신교도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것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깊은 착잡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자신들의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그 신을 ‘혐오의 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믿는다는 신을 모독하고 예수의 메시지를 왜곡시키는지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갈 길이 참으로 아득하게 멀다. (자세한 기사는 다음을 참조:http://m.media.daum.net/…/culture/newsview/20160428212555877
4. 나는 성소수자 학생들과 동료들을 늘 만난다. 내가 이 학교에서 일한 지 10년 동안 4명의 조교가 있었는데, 그 중 3명이 성소수자이다. 물론 내가 조교로 쓸 학생을 선택할 때 내가 보는 조건, 예를 들어서 나의 연구주제들이나 방향 그리고 담론들을 이해를 하는 학생이라는 ‘기준’에 그들이 맞았기에 택한 것이지, 그들의 성정체성이 그 조건은 아니었다. 또한 내가 일하는 대학원의 학장은 성소수자이다. 이 대학원이 위치한 대학교(Texas Christian University) 는 전체 500여명의 전임교수와 1500여명의 전임직원이 있는데 그 2000여명의 교직원중 성소수자의 배우자들/파트너들에게도 연금과 건강보험혜택을 준다. 그 행사에서 데모를 하는 이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나의 동료, 학생, 학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곳이다. 그 분들들이 사용한 표현에 따르면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분명히 '마귀집단'이 될테니 말이다.
5.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마련된 행사에서, 극도의 혐오적인 표현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표출하고 있는 개신교도들은 누구에 의하여 혐오가 그 종교적 일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혐오의 신’을 가르치는 성서해석을 하게 만든 요인들중에 교육하는 이들도 포함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를 포함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들이 좀더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인들이 저렇게 치열하게 타자를 혐오하는데에 쓰는 에너지를 "차별없는 세상"을 만드는데로 돌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한국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 아닌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혐오의 신’을 버려라.
그 때에 비로소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으로 이 세계속에서 존재함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강남순 |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