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안의 글쟁이들
흩어짐의 가능성 본문
눈이 빠지게 졸린데 벽장 안은 꼭 이럴 때 오고싶어지더라.
이번 년도에는 어떤 지원사업들이 있는지 대략 훑어본다. 대상은 주로 1년이상 실적이 있는 예술단체. 청년분야에서는 경력을 차치하더라도 예술가. 나처럼 예술가가 아니고, 경력이 부족하고, 단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청년 문화기획자의 자리는 좁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작하고 싶다.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뭐든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세상에서 그게 제일 재밌다. 사실 이 욕구를 정확하게 글로 쓸 만큼 스스로 알아차리기까지는 온 생애가 다 걸렸다.
윈도우 바탕화면같은 들판에 이젤을 놓고 그림그리는 화가가 되고싶던 8살. 돈 못버는 직업이라는 엄마 말에 쉽게도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20대 초반이 되도록 책상 앞에 앉아서는 도저히 알 수 가 없던 '좋아하는 일' 이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던 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문화예술교육 수업에 참여하여 학생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을 하게 됐다. 표정들을 관찰하게 됐고, 찰흙을 만지고, 종이를 접고, 목공도 하고, 악기연주도 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고, 촬영도 했다. 여름엔 바다에도 가고 같이 먹고 자고 하다보니 초등학생들은 중학생이 됐다. 딱 그만큼 나도 컸겠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밌게 놀면서 배울 수 있을까 고민 했던 것들이 '기획'이란다. 현장에서 함께 놀면서 도와주는건 '퍼실리테이션'이었다.
문화예술기획일을 하면서도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인 채로 구체적으로 어떤 '일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 만족도는 천지차이다. 그래서 또다시 더 예리하게 나의 욕구를 발라낸다. 나는 왜 기획하는가? 재미, 그러니까 내 것을 어떤 것으로 꺼내놓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그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때 그때 나의 문제의식이 다르고, 그 중에서도 표현하고자하는 것이 있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도 다양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는 서로의 욕구에 의해 만나고 흩어지고 새로운 곳으로 가기도 한다. 도시공동체는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유지되고 있다. 사실 그렇지 않나, 우리 각자가 지속 가능하려면 끊임없이 더 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간혹 어른들이 특히 제주에서는 '오래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정규직을 시켜주겠다.' 하는데 나는 어떤 조직에 정규직으로 그냥 오래 있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예리하게 잘 벼려진 나의 욕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을 종종 하게되는것도 그렇지만, 때마다 다르게 주어지는 기회들에서 채워지는 다양한 즐거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간단위로 나오면, 일정 기간 이상의 실적이 있고 단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이제까지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어디 도망가지 않고 계속 할 것같은 느낌을 풍겨야만 하는 즉, 지속가능성을 담보로 한 '단체' 대상의 지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청년문화예술기획자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현재의 경험을 통해서 정확한 자기 욕구를 빨리 파악하고 다음 스텝으로 수월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단체의 지속가능성이 아닌 개인의 흩어짐의 가능성에 투자하는것 아닐까. 한 도시에서 개인의 욕구를 다양하게 풀어낼 수 없다면 곧 다른 도시로 가버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것이 진짜 지속불가능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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