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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안의 글쟁이들
급 끊은 비행기표, 동생이 있는 안동 첫 여행. 조선시대 양반 문화 말고 뭐 볼게 있을까 했는데 볼게 많았다! 두번 세번 틈틈히 올듯 ㅎㅎㅎ 만성적인 우울을 떨치려 빨빨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이박 삼일이 알차게 지나갔다. 몸은 떠나왔지만 머리 속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 순간 순간의 기억들은 불쑥 희한한 순간에 나를 덮친다. 문장 하나 하나로 치유되는 책 한 권,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명곡으로 낯선 느낌과 새로운 기쁨을 채워넣었다. 자연적인 곳 하나, 원도심에 청년들이 꾸려놓은 장소들, 괜찮은 앨범과 책 하나로 나에게 매몰되지 않는 여행이 되었다!
날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요즘입니다. 하루를 쪼개어 보내니 하루가 길고도 짧은 요즘이네요. 시인 둘이 결혼식을 대신해 만든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덕분에 요즘 쓸데없는 것에 힘을 쓰지 않게 된 '힘 빼기의 기술' 의 저자 김하나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읽고 싶은 책이 동네 서점에 있다는건 꽤 큰 위안입니다. 언젠가 사러 가야지 라는 기대로 날들을 버팁니다. 작가 김하나는 쿠바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더 부채질해놨습니다. 분노의 질주 8,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만으로도 충분히 가볼만 한 것 같습니다. 무인양품 다이어리는 만년필로 필사하기 딱 좋은 재질입니다. 쓰자마자 잉크를 흡수하되 비치지 않고 바로 마르는걸 보고 감탄, 감탄했어요. 종이와 펜을 갈수록 거르게 되는 ..
짧게는 3주에 한 번, 길게잡아 한 달에 한 번 그녀와 나는 일요일 1시에 만나 필사를 한다. 그녀는 시를 읽고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도무지 화를 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녀에게서 거리감도 꽤 느꼈었지만 이십대의 후반에 마주쳐 서른에 다시 만난 우리는 꽤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지 않은 스스로를 꺼내보이기도 한다. 한여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그녀와 어떤 계절에도 쉽게 울고 웃는 내가 만나 일상의 안부를 묻고 그날의 책을 필사한다. 슥슥거리다 서로가 좋아하는 구절을 보여주기도 하고 비슷한 류의 영화나 전시 얘기가 끼어들기도 한다. 책이 읽히지 않을 만큼의 사건을 겪어온 날에는 책을 드문 드문 읽다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누구의 가족, 어디의..
'아빠, 내 장점은 뭔거 같애?' 일요일 오전 절 가는 차 안에서 아빠에게 물었다. 나도 왜 했는지 모를 뜬금없는 질문. 아빠는 잠깐 생각하더니 '너는 자기 표현을 잘하지' 라고 답변했다. '책임감이 강한데 그게 어떨땐 강박으로 갈 때가 있지' ' 아 아빠 장점 얘기하라니까 왜 글로 빠져~~' '아무튼 너도 날 닮아서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게 있단 말이야' '아빠 근데 난 20년동안 그게 책임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두려움이었단걸 최근에야 깨달았어. 그냥 하면 되는데.' '근데 그래서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잖냐' 식의 대화가 이어지고 아빠는 갑자기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어릴때부터 손바닥에 껍질 벗겨지는게 제일 콤플렉스였다. 그때는 놀때도 손으로 뭐 해야되는게 많았는데 사람들한테 손 보여주는게 ..
하루의 마무리는 조성진이 제일이다. 쇼팽 발라드 1-4악장까지 듣다보면 인위적인 것들이 떨어져나가고 나 자체의 모습으로 쉬게된다. 필사할 때도, 감정을 쏟아내지 못할 때도 제일이다. 딱히 좋아하던 피아니스트가 없어 왜 사람들이 조성진을 극찬하는지, 비교의 대상은 찾지 못했지만 그냥 지금은 이 사람의 세계만으로도 오랫동안 충분할 느낌이다. 유투브에 보면 그가 쇼팽 발라드 1-4악장을 짤막하게 치면서 영어로 설명하는 영상이 있는데, 군더더기 없는 한국식 영어발음이 더 귀족적(?)으로 들린달까- 몇년전까지만 해도 연음이 매끄러운 전형적인 미국식 발음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이런 지식인, 예술인들이 툭 툭 내뱉는 딱딱한 영어발음만의 매력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언젠간 나도 여러 피아니스트들의 성향을 구별해낼 수 있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영화 아가씨 아카입 룽잉타이 작가의 아이야, 천천히 오렴 오랜만에 도서관에 간 아빠는 역사기록 쪽에서 뭘 하나씩 꺼내보시더니 좀 있다 가자 하네요. 물회도 셋이서 먹고 쨍쨍하다 못해 무더운 날씨에 헥헥대며 낮잠을 자러 들어옵니다. 나는 귀찮은 몸을 끌고 헬스장에 갑니다. 30분쯤 땀을 흘리면 이대로 계속 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하이 상태가 잠깐 옵니다. 발등이 뻐근해질 때쯤 러닝머신에서 내려오고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못한 체 스트레칭을 합니다. 그래도 오늘의 운동은 해내서 다행입니다. 집에 와 돼지고기 양파 볶음을 빠르게 먹고 전화를 겁니다. 저녁이 되자 동생과 배드민턴을 치고 편두통이 올라와 타이레놀을 먹습니다. 한동안 잠..
다양한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요즘따라 더욱더 어른들보다 또래들에게서 많이 배우는 것 같다.어른들을 보면서는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듣는 행위 자체보다는 상대가 말을 꺼낼 수 있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듣는 행위는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여기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가 말을 편안하게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건 무의식적인 반응, 표정, 말투,소소한 말붙이기. 내가 조금만 여유가 없어서 힘을 빼면 바로 들통나버리는 그런거다. 그게 사실 모두가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걷혔을 때, 성격, 근본적인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에너지 상태에 따라 기복이 심하..
눈이 빠지게 졸린데 벽장 안은 꼭 이럴 때 오고싶어지더라. 이번 년도에는 어떤 지원사업들이 있는지 대략 훑어본다. 대상은 주로 1년이상 실적이 있는 예술단체. 청년분야에서는 경력을 차치하더라도 예술가. 나처럼 예술가가 아니고, 경력이 부족하고, 단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청년 문화기획자의 자리는 좁다.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작하고 싶다.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뭐든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세상에서 그게 제일 재밌다. 사실 이 욕구를 정확하게 글로 쓸 만큼 스스로 알아차리기까지는 온 생애가 다 걸렸다.윈도우 바탕화면같은 들판에 이젤을 놓고 그림그리는 화가가 되고싶던 8살. 돈 못버는 직업이라는 엄마 말에 쉽게도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20대 초반이 되도록 책상 앞에 앉아서는 도저히 알 수 가 없..
26살 사람입니다. 가장 큰 이슈는 통장 잔고가 0원이라는거에요. 참으로 걱정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본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용돈을 받아보네요. 기분이 이상합니다. 졸업한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졸업과 동시에 1년 정도 일을 다니다 그만둔후로 공부를 하다 다시 취업을하고, 얼마못버티고 박차고 나왓더니 어영부영 1년이 또 훌쩍 지나가고 있네요. 전공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일도 재미있을줄 알았더니 막상 일해보니 차라리 재입학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반드시 기술을 배울거에요. 난장판같은곳에서 일을 하면서 요즘 누가 평생직장을 따져? 평생 계약직이여도 할만한곳을 다닐거야! 하고 두번을 박차고 나왔더니, 지금은 '거지같아도 뼈를 묻을게요' 하며 구인공고를 살펴보고 있네요. 스스로..
오늘의 잡담(잉고.)에 대한 독후감 "'평화'라는 프레임이 시위 행위의 다양성을 가둔다." 촛불 집회 때 어느 젊은 시위자의 말. 어렴풋 그때 부터 시작된 삶의 지향성에 대한 두번째 생각(첫번째는 청소년때의 학습에서의 발버둥. 아, 이것도 여전히.). 그러다 오늘 벽장안의 여러 글을 읽다, 잉고님의 글을 읽고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또 게을러 질까봐 휴대폰 키패드를 붙잡고). 요전엔 "남의 눈치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라" 라던가 "좋은 사람이 되려다 껍데기가 된다"하는 말이 참 멋지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한번더 꼬아서 생각해보았더니 이것은 잉고님이 말하는 '성향'의 관점으로 바라봐야할지도. 물론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는게 옳지만, 그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