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안의 글쟁이들
치치라이푸2. 그 시작 본문
그러니까 나의 뉴질랜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5살에 넷째이모부와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은 어린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책과 영화속에서만 보았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아마 이때,
나의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조금 좁히는 계기가 되었던거 같다.
(2005년 중2때. 체코프라하, 오스트리아빈)
하지만 유럽을 다녀왔다는 흥분감은 한국에 돌아오고 금방 식어버렸다.
나는 "모범생" 이었다.
어느 누구나와 같이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몰두해야 했고, 고입을 준비해야 했다.
법과 질서,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고, 그에 대한 보상도 즐겼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부모님의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중학교까진 성적도 좋았다. 과학고도 그냥 갈 수 있을만큼.
(중3때 졸업식때)
그런데 고등학교는 공부를 하면 성적이 잘 나왔던 중학교와는 달랐다.
독서가 부족했던 탓일까, IQ가 딸렸던 탓일까.
도저히 수능 모의고사를 중학교때 만큼 잘 볼수가 없었다.
고등 3년 내내 어중간한 중상위권을 유지했고,
성적 상위 10% 학생들의 대한 선생님들의 공공연한 차별을 보며
조금씩 시스템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SKY 대학에 가야하는데. 못갈거 같다.
그럼 사관학교 시험이라도 쳐볼까.
제복을 입는것도 나름 멋있어 보이고,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으니..
(2007년 고1 때, 대기고에서)
이때쯤 넷째이모가 사촌동생들과 뉴질랜드에서 지내고 계셨다.
나는 고3이 됐다.
그리고 유럽여행을 함께 다녀온 넷째이모부가 명절 때 오랜만에 제주로 오셔서 꺼낸 한마디.
"한국에서 어중간한 대학 갈거면, 외국나가서 공부하는게 어때?"
바짝바짝 말라있던 내 마음에 불씨 하나가 던져졌다.
아, 나의 선택지에 유학이라는게 가능한 옵션이었던가?
우리 집안 형편에 가능할까?
더군다나 아버지는 회사 상황으로 잠시 실직한 상태였다.
이 말을 듣고 나서는 도저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지겹고 답답한 입시공부를 안 할 수 있는 방법.
일류 대학 나온 애들 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갖을 수 있는 방법.
게다가 그런 공부를 배낭여행 다녀왔던 유럽과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다니.
부모님께 여쭤봤다.
유학을 보내 줄 수 있겠냐고.
정 걱정 된다면 다른곳 생각 안하고 이모가 계신 뉴질랜드고 가겠다고.
학비랑 생활비랑 계산해보니 이정도 나오는데 보내줄 수 있겠냐고.
처음에 아버지께서 완강히 거절 하셨다.
실직해 계신 상태였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지원해주실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그 후로도 여러차례 부모님께 설득을 했고,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주셨다.
경제적으로도 해볼만 하다고 아버지를 함께 설득해 주셨다.
결국 2009년 11월 뉴질랜드로 떠나게 되었고.
그게 이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2010년 뉴질랜드 퀸즈타운)
P.S
물론 8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가끔은 유학이란 길을 선택한 것이 부끄러워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부모님 등꼴 부러뜨리면서 무얼 누리고자 했는지.
삶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자랑스런 아들 ..이런것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이 부분은 다시 새로운 포스팅으로 찾아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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